(Kr-CBG-HD)천성경1-2-1:21~24

천성경 훈독 영상 (제1편 2장 1절 21~24항)

천성경 훈독 영상 (제1편 2장 1절 21~24항) from PeaceTV on Vimeo.

21 이제 인간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 하겠기에 절망 속에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는 참다운 진리를 가지고 새로운 천지에 들어갈 수 있는 진리의 개방운동이 벌어져야 됩니다. 낙망과 절망에 부딪혀 있는 환경을 정비하고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기준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무슨 주의, 무슨 주의 하면서 진리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완전한 진리가 나올 때에 비로소 세계는 완전히 통일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통하고 나서는 인격을 완성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심정을 완성해야 됩니다.
22 우리는 심정을 통해서 역사적인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창조 당시의 하나님은 심정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는 창조 당시의 하나님의 심정과 인간 타락 이후의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으며, 역사 과정을 거쳐 오면서 어떤 심정을 가지고 계시는가 하는 역사적인 심정의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믿기는 믿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압니까?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시대적인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고,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23 애달픈 심정을 갖고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썼지만, 결국에는 십자가에 달리게 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시던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만민을 대신하여, 온 우주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여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사명이 있었지만, 불신하는 무리에게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결국에는 골고다산상에서 십자가까지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을 중심하고 약속되었던 모든 뜻이 파괴되어 버리고 자신의 일생이 결국은 십자가의 형틀에 귀결된다는 것을 느낀 예수님이었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끝까지 하늘을 배반하지 않고 하늘에 대한 충성의 도리를 다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이 예수님을 불신했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것에 상관하지 않고 천륜을 향한 그 길을 일생의 목표로 삼아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일생이 인간에게 역사적으로 소망의 길이 되었습니다.
24 타락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원한이 있다면, 그것은 참부모가 없고 참부부, 참자녀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타락한 인간이 양자의 모양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양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양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슬픔은 무엇인가? 그것은 직계의 자녀가 변하여 양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하나님의 직계 자녀를 회복하기 위한 서글픔의 역사노정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적인 서글픈 심정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세상에서 자식을 낳아 기르며 사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부부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 본연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기준이 이 땅 위에 나타나면 우리에게는 선에 대한 이념이 필요하게 됩니다. 나 자체가 선의 본체이면서도 오늘날 나 자신은 그 중심에 의한 상대적인 생활관밖에 갖고 있지 못합니다. 모든 것의 주체로 설 수 있는 가치의 중심, 생명의 중심, 이념의 중심, 사랑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참부모의 사랑의 심정에서만 이루어집니다.